1997년 8월 : 월간 불광 - 캄보디아 승왕 텝퐁 스님

게시일: Nov 27, 2015 12:19:10 AM

킬링필드로 악명을 날렸던 폴포트가 투항한 외신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온 '훈'할머니의 소식이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지난 6월 20일 캄보 디아의 승왕인 텝퐁 스님이 미타종의 초청으로 방한하였다. 텝퐁 스님은 미타종에서 개최한 국제마정수기 법회, 조계종 총무원 방문 등 공식일정을 마치고 귀국 전날인 7월 3일 남지심 (소설가. 우리는 선우 공동대표)씨 댁을 방문했다. 

기자는 텝퐁 승왕 일행을 기다리면서 95년부터 꾸준히 캄보디아 승단 교육 지원 및 난민돕 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텝퐁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아나룸 사원의 강사스님 교육비 (1천불)와 깜풍 고아원(4백불)을 매달 지원하고 있는 우리는 선우의 공동대표 남지심씨로부 터 캄보디아와의 인연이야기를 들었다. 

"94년 성금을 모아 국제기아대책위원회를 방문했다가 '세계 속에서 발언권을 가지려면 세계 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건 종교도 마찬가지' 라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불교가 세계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내는 종교 로 자리잡지 않고서는 한국불교도 결국 제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구체적인 방안 을 모색하던 중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동남아시아 중앙부에 자리한 캄보디아는 오랜 역사의 소승불교국가이다. 프랑스 지배(1863 년-1953년)를 무려 90여 년이나 받았으나 불심이 흔들리지 않았고, 승복을 입었다는 이유만 으로 스님들을 존경하여 '승려의 나라'로 불렸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캄보디아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왓트를 건설한 찬란한 불 교문화의 전통보다 '킬링필드'로 더 유명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1976년부터 79년까지 정권을 장악했던 크메르루즈군의 독재자 폴포트는 200만 명 이상을 학 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하였다. 이때 불교도 2000년 캄보디아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법난을 당했다. 당시 승정인 부탄 스님을 위시해서 2만 명이 넘는 승려가 학살당했으며, 많 은 절들이 파괴되었다. 

폴포트 정권이 무너지고 캄보디아에서는 불교계를 중심으로 킬링필드의 이미지를 불식시키 고 불교의 전통을 되살리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오고 있다. 

특히 1978년 캄보디아 승가 최고회의인 원로회의 의장으로 추대받았으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왕사(王師)이자 승왕(僧王)으로서 불교부흥과 국가재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텝 퐁 스님은 국민 전체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스님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에는 현재 5만여 명의 스님이 수 행 중이다. 

캄보디아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가운데 도착한 텝퐁 스님, 오랜 여정에 누적된 피 로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말씀하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적이었 다. 

"하나의 부처님을 모시기 때문에 국가간의 간격도 없는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와 한국은 수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도 다 부처님의 뜻입니다. 부처님의 가 르침은 다른 길에 없고 오직 한 길입니다. 오른쪽이나 왼쪽이라 어느 쪽이든 합치면 한 길 로밖에 갈 수 없습니다. 굳건하고 강하게 하나의 불심으로 뭉쳐서 양국간의 우의가 더욱 강 화되었으면 합니다."

폴포트 정권의 극심한 불교탄압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대해, "폴포트 정권도 불심을 없 앨 수는 없었다."고 하며 국민 전체가 부처님 마음으로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음을 강조하셨다. 

1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프랑스 지배를 받아오면서도 국민의 95%가 불교신도인 점에 대해 서 무척이나 경이로왔던 기자는 텝퐁 스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문이 풀리는 듯했 다. 

여법함, 부처님 법대로 사는 승가의 여법한 위의… 전통적으로 국민들의 교육기관이자 사회 복지기관이던 캄보디아 승가(현재 캄보디아 사찰에서 초등학교와 행려병자시설, 병원을 운 영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는 국민들의 정신적 기둥이다. 지금도 캄보디아의 어떤 행사 든 스님이 빠지면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불교가 생활 속에 거의 완벽할 정도로 뿌리내려져 있다. 

"캄보디아는 물이 매우 귀합니다. 사람들이 마음놓고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지류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전으로 폐사가 되다시피 한 사원을 복원하고, 불교대학을 설립해서 후학을 양 성, 체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조계종과 미타종, 우리는 선우 여러분들의 환대와 지원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불교와 캄보디아 불교 교류뿐만 아니라 국가간의 교류에도 새로운 이정표가 될 이번 텝 퐁 스님의 방한은 여러 모로 의미 깊은 것이었다. 스님이 귀국한 뒤 들려오는 심란한 캄보 디아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폴포트의 투항으로 공동의 적이 사라짐에 따라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제 1, 제 2 총리 측의 암투가 정면대결로 치달을 전망이라는 보도가 사실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텝퐁 스님의 그 인자한 미소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빛이 생각났다. 

불심으로 캄보디아의 내전이 종식되기를, 모나리자 미소보다 아름답다는 크메르 불상의 미 소가 되살아나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출처 : 월간 불광 / 글쓴이 :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나현정 불자님